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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라는 영화 배우가 있습니다.
무술도 하고 멜로도 하고 감독도 하고 여배우랑 놀아나기도 하고, 그리고 글도 쓰는 사람입니다.


사실 전통적인 의미의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죠. 주성치는 그냥 스토리와 캐릭터, 그리고 대사를 만들어 낼 뿐입니다.

주성치는 그러나, 수많은 현대 문학가들이 추구하는 미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가벼운 마음\'이죠.


전통적인 문학은 쇳덩이처럼 무거운 생각과 도살장 선지처럼 현란한 글로 독자를 휘어잡아야 한다는 관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 극점에 달한 예가 (쇳덩이의 경우) 도스토예프스키와 (도살장 선지의 경우) 피츠제랄드였죠.

그러나 이제는 아니죠. 그렇게 무겁고 무섭게 쓰다간 책이 안 팔리니까... 라기 보다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읽는 독자가 재미없다는 게 아니라 쓰는 작가가 재미없다는 겁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피츠제랄드 모두 글을 쓰는데 고민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베토벤이 작곡할 때와 비슷했죠. 음표 하나 그리는데 1시간씩.

작품 하나 쓰는데 무슨 열반하려 고행하는 것도 아니고. 노력 대비 효율이 너무 낮다는 겁니다.

문학은 이제 더 이상 작가가 열반하기 위한 고행의 과정이 아닌 게 됐습니다. 쓰는 작가도 즐겁고 읽는 독자도 즐겁고. 좋은게 좋은 겁니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갑니다.

그래서 요시모토 바나나, 하루끼 같은 애들이 득세를 한 겁니다. 피를 흘리듯 고통스럽게 글쓰는 시대는 갔거든요. 새로운 사조의 총아들이라 할만합니다. (물론 바나나 같은 애들은 좀 너무하긴 합니다. 생각이 거의 없으니까.)



\'가벼운 마음\'은 이제 모든 현대 문화예술의 기본 정신입니다. 미술도 음악도 문학도 발레도 무용도 격투기도 패싸움도 간질발작도... \'가벼운 마음\'을 가진 자가 이깁니다.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구경하는 사람도 편하고 자연스러우니까요.


주성치 얘기하다가 말이 길어졌는데, 주성치는 영화계에서 \'가벼운 정신\'의 화신이라 할만합니다. 주성치 영화에는 어떤 논리도 근거도 (치밀한) 구성도 철학도 교훈도 패턴도 없습니다. 그냥 흐름만 있죠. 웃기는 흐름. 굳이 왜 그렇게 됐는지 설명도 없고 굳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부연도 없습니다. 이건 그냥 웃기려고 만든거지 감동이나 교훈 따윈 기대하지 말란 겁니다.

이런 정신이 가장 격렬하게 드러난 작품은 \"쿵푸 허슬\"입니다. 이 영화는 전통적인 스토리텔러의 입장에서 보면 도무지 뭘 얘기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웃기려다가 감동을 주려다 만 거 같기도 하고, 감동을 주려다가 웃기려다가 만 거 같기도 하고 참 (전통주의 입장에선) 한심한 작품이죠.

이 영화의 마지막을 자세히 보면 근데 그게 꼭 그렇게 한심하지 않습니다.

\'각성한\' 주성치가 악당이 쏜 암기를 잡아 연꽃 모양으로 만들어 날려 버리죠. 그리고 반격하려는 악당 얼굴에 1mm 비껴서 초토화 장풍을 날립니다. 악당은 주성치가 여전히 무섭고도 밉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너 그 권법 어디서 배웠니\' 주성치가 엉뚱한 답변을 합니다. \'가르쳐 주까?\'

그제서야 악당은 주성치에게 졌다는 걸 깨닫습니다. 주성치에게 엎어져서 용서를 빕니다.

대다수의 관객들은 코웃음을 칠만한 결말인데, 사실은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는 대사가 있습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

송강호가 무지막지하게 얻어 맞고 완전 병신 폐인돼 도망치는 \'유일한\' 용의자를 붙잡고 하는 대사. 연쇄살인범에 대한 처절한 증오, 붙잡아 응징하고 싶은 미칠 듯한 욕구, 좌절, 공포, 슬픔, 증오, 허탈, 피로, 욕구, 증오, 증오, 증오... 수년간 쌓이고 쌓이다 폭발하지도 해소되지도 못한채 세월의 흐름 속에 빗물처럼 흘러 가버릴 무너져 버릴 듯한 감정들.

이 모든 감정을 송강호의 대사 한 마디에 담습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

사람들은 항상 \'언어로 표현 못하는(beyond description)\'이란 말을 하는데, 위 대사의 의미를 알고 나면 절대 그런 말을 다시는 해서는 안됩니다. 봉준호 감독은 했거든요. 보통 사람들이 평생 쌓아두고 고민하고 노력해도 안 될거라 생각한 표현 방법을 언어로 표현해 낸 겁니다.

어떻게? 논리도 근거도 구성도 철학도 교훈도 패턴도 없이. 단순하게. 편안하게. 허탈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주성치의 \"가르쳐 주까?\" 대사는 이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물론 살인의 추억처럼 엄청난 감동과 무게감을 가지진 못합니다. 그렇게 만든 영화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주성치는 다른 이를 제압한다는 것, 내가 이긴다는 것, 득도를 한다는 것, 부처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을 표현하려고 했을때, 그 대사를 생각해 냈을때, 분명 봉준호 감독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편안하게. 허탈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주성치는 항상 이 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봉준호 감독도 살인의 추억부터 계속 그랬고요. 그래서 영화가 자연스럽게 재미있는 겁니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면 살인의 추억 같은 명작도 만들어 낼지 모르겠습니다.

제목 작성자 추천수 조회수 작성
안부 여쭙니다 ^^
김영봉 2008-03-05 2 0
김영봉 0 2 2008-03-05
\"편지, 여관, 그리고 한 평생\" 심재휘
Pozx™ 2008-03-03 2 0
Pozx™ 0 2 2008-03-03
주성치 영화가 좋은이유?
Pozx™ 2008-02-26 2 0
Pozx™ 0 2 2008-02-26
표지사진에 Bravo~!!
Croquis/이준연 2008-02-17 2 0
Croquis/이준연 0 2 2008-02-17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김영봉 2008-02-06 2 0
김영봉 0 2 2008-02-06
안녕하세요 ^^
김영봉 2008-01-23 2 0
김영봉 0 2 2008-01-23
스캔했어요..
김형섭 2008-01-21 2 0
김형섭 0 2 2008-01-21
안녕하세요.
난호 2008-01-10 2 0
난호 0 2 2008-01-10
안녕하세요, 뽀즈님~
김현준 2008-01-06 2 0
김현준 0 2 2008-01-06